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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연예인이 하면 '상식'도 '이기적'이 되는 근거 없는 '논란'[플랫]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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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SHOULD ALL BE FEMINISTS(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지난 19일 그룹 레드벨벳의 멤버 조이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몇 장의 사진을 게시했습니다. 대통령 직속 기관인 국가기후환경회의가 정한 푸른 하늘의 날(9월7일) 홍보대사 위촉식에 참석하기 위해 정장을 차려 입은 본인의 사진이었죠.

이 사진은 일부 온라인 공간에서 화제가 됐습니다. 정장 안에 갖춰 입은 티셔츠에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뜻의 영어 문구가 적혀있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남성들이 주축이 된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 사진을 두고 “걸그룹 멤버가 페미니스트 티를 내는 것은 이기적인 행동”이라며 비난했습니다. “페미니스트는 혐오주의자”라는 댓글도 쇄도했습니다. 위키트리 등 일부 매체는 이같은 의견을 두고 “심각한 논란이 터졌다”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여성 연예인이 하면 ‘상식’도 ‘이기적’이 되는 근거 없는 ‘논란’[플랫]
지난 19일 레드벨벳의 멤버 조이가 정장을 입은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그가 입은 티셔츠에는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뜻의 영어 문구가 적혀있다. 조이 인스타그램 캡처

지난 19일 레드벨벳의 멤버 조이가 정장을 입은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그가 입은 티셔츠에는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뜻의 영어 문구가 적혀있다. 조이 인스타그램 캡처

그러나 이같은 비난과 이를 ‘논란’으로 포장한 매체의 보도에는 근거가 없습니다. 페미니스트의 사전적 뜻은 이렇습니다.

“성별로 인해 발생하는 정치·경제·사회 문화적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견해를 따르거나 주장하는 사람.”

‘이기’나 ‘혐오’가 끼어들기엔 지극히 상식적인 의미입니다. 사전 위에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페미니즘은 이미 수년 전부터 세계 패션계가 주요 콘셉트로 채택할 만큼 대중화된 상식이 됐습니다. 실제로 조이가 입은 티셔츠는 크리스찬 디올 최초의 여성 수석 디자이너인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의 작품입니다. 치우리의 디올 데뷔 무대인 2017년 봄/여름 컬렉션 오프닝 무대를 장식한 티셔츠죠.

당시 콜렉션의 런웨이에서는 책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나이지리아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연설을 샘플링해 만든 비욘세의 곡 ‘플로리스’가 흘러 나왔습니다. “우리는 소녀들에게 야망을 갖고 성공하되, 남성들을 위협하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는 내용의 가사가 흘러나왔죠. 치우리는 자신의 패션쇼에 대해 “나는 세상에 관심을 기울이고 오늘날의 여성을 재현하는 패션을 창조하고 싶었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여전히 마른 여성 모델을 선호하는 디올 패션쇼에서 페미니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모순적이라는 비판도 일었지만, 뉴욕타임스·워싱턴포스트 등 해외 언론들은 여성 디자이너가 일으킨 변화에 일제히 찬사를 보냈습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크리스찬 디올의 ‘페미니스트 티셔츠’를 입고 사진을 찍은 연예인들은 이미 차고 넘칩니다. 국내에서는 배우 김혜수, 정유미, 가수 현아 등이 국외에서는 가수 리한나, 래퍼 에이셉 라키, 배우 샤를리즈 테론, 제시카 채스테인, 제니퍼 로렌스, 모델 켄들 제너 등이 입었습니다. 화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물, 파파라치 사진 속에서 이들은 자연스럽게 티셔츠를 입고 행동합니다. ‘이기’나 ‘혐오’와는 여전히 거리가 멀어보이는 모습들입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영화 <매드맥스> 드라이브 인 시사회에서 배우 샤를리즈 테론(왼쪽)이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타가 되어야 합니다’ 티셔츠를 입고 등장했다. 2017년 디올의 페미니즘 캠페인에 동참한 리한나가 입은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티셔츠. 게티이미지·리한나 인스타그램 캡처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영화 <매드맥스> 드라이브 인 시사회에서 배우 샤를리즈 테론(왼쪽)이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타가 되어야 합니다’ 티셔츠를 입고 등장했다. 2017년 디올의 페미니즘 캠페인에 동참한 리한나가 입은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티셔츠. 게티이미지·리한나 인스타그램 캡처

이 티셔츠가 ‘논란’이 된 건 국내 여성 연예인이 착용했을 때뿐입니다. 특히 여자 아이돌의 경우 비난의 강도가 거셉니다. 앞서 비슷한 상황들이 숱하게 있었죠.

2018년 레드벨벳 멤버 아이린이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밝혔을 때, 그룹 에이핑크의 멤버 손나인이 ‘GIRLS CAN DO ANYTHING(여성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적힌 휴대폰 케이스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을 때 일부 누리꾼들은 이들을 ‘페미니스트’라며 강도 높게 힐난했습니다. 당시 대중문화 평론가들은 “여성 연예인들의 ‘사회적 말하기’를 금기시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페미니즘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 작용한 결과”라고 꼬집었습니다.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효한 비판입니다.

여성들이 주로 활동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트위터 등에서는 해당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조이를 힐난하는 일부 누리꾼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눈에 띄는 것은 조이에 대한 근거 미달의 비난을 ‘심각한 논란’으로 비약해 기사화하는 일부 매체에 대한 비판입니다. 여성 연예인의 표현과 운신의 자유를 위축하는 악플과 비난을 기사화할 때는 조금 더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요?


김지혜 기자 kimg@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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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24, 2020 at 08:27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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